권순익

권순익, 느낌(9-02), 40.9x31.8cm, Acrylic and Graphite on canvas, 2015

권순익

권순익

 

막걸리와 같은 투박함으로 버림의 세계를 추구하다.

장준석(미술평론가)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흙은 우리들의 고향이자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만물과 우주 자연의 근원으로서 생명체를 지탱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흙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어서, 보드라운 흙 한 줌을 손에 쥐면, 혹시 힘든 인생 여정에 있다 해도 풋풋한 냄새와 더불어 어린 시절의 그리운 추억들을 새록새록 되살려주며, 세파에 찌든 피로감을 씻어내어 준다. 예로부터 흙을 사랑하는 사람 치고 순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했을 정도로 흙은 인생의 활력소나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다.

흙을 사랑하고 흙으로부터 예술적인 모티브를 찾아온 권순익의 그림은 흙과 같은 생명력은 물론이고 부드러운 감성까지 함축하고 있다. 흙을 빚는 도예가로서 예술을 시작한 권순익은 무엇보다도 흙을 통하여 인간의 삶과 예술을 이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본성과 생명의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기에 작업 세계를 꾸준히 가꾸어가고 있는 그의 작품은 마치 부드러운 흙을 만지듯 포근하며 담박하다.

이처럼 권순익의 그림은 마치 부드러운 흙이 바람에 날려 자연스럽고도 아기자기한 형상을 이룬 듯한 이미지를 지닌다. 또한 그의 그림은 어떠한 인위적인 요소도 배제된 채 자연 그 자체에서 만들어진 단순한 형상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는 듯하여 편하고 여유롭다. 그의 화면 속에서는 산이 보이거나 새들이 날기도 하는데, 나무든 사람이든 물고기든 어떤 하나가 특별하게 돋보인다기보다는 각기 자연스레 질서를 이루듯이 아기자기하게 호흡하며 숨을 쉬는 것이다. 마치 부드러운 흙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대지에 자연스런 형상들이 만들어지는 듯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심성을 움직일만한 개성적인 맛이 따스하게 피부로 다가옴을 다분히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부드럽고 따사한 그림은 권순익만의 강점이라 생각된다. 마치 우리의 삶 어느 한 구석에서 누구나 한 번씩은 피부로 느꼈을 만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참으로 흙처럼 순박하고 여유로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경기도 장흥의 어느 평범한 농가주택 같은 데서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생활 자체가 자연인 것처럼 투박하며 담박하여 신선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런 작업 공간에서 한국인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엔가 묻혀있을 만한 형상들을 화면 속으로 끌어내므로, 단순하게 형상화된 두텁고 따뜻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더욱 맑고 깨끗하다. 마치 어느 시골의 골방에 앉아 솔방울을 태우는 듯한 향긋하고 구수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런 권순익의 그림이 최근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꺼리를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책 속에 있는 활자나 이야기꺼리를 화면 안에 끌어들여 자신의 내면세계에 투영시켜보는 작업이다. 책 속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의 내용이나 활자의 이미지가 그대로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욱 관심을 끈다. 그의 그림은 하나의 사각 평면 안에서 정말로 책의 활자나 이미지가 펼쳐지는 듯하여, 작가의 내면에 잠재해있는 감성적 표현력이 남다름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작업실에 흩어져 있는 <노인과 바다>, <달을 찾아 나서다>, <잃어버린 도시들> 등의 책들은 그 제목부터가 마치 그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들이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데 훌륭한 모티브를 제공해줌은 물론일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간혹 하나의 활자가 크게 보이기도 하거든요. 어쩌면 그 묘미를 찾는 작업이 최근의 관심사인 지도 모르겠어요.” 이처럼 권순익은 책이 주는 신비한 조형성을 만끽하고 이를 화면으로 표현하는 데 흠뻑 빠져있다. 이는 그가 흙처럼 부드러운 독특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독특한 감수성의 그림들을 보려면 흙 속에 묻혀있는 진주를 찾듯 조심스럽고도 유심히 봐야만 한다. 그의 어떤 그림은 언뜻 보기에 미완성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속에는 보일 듯 말 듯한 여러 형상들이 마치 흙으로 살짝 덮어버린 것처럼 자리하고 있다. 흙먼지가 하나둘씩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 그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은밀하고도 은은하게 감춰져 있다. 악기 연주자 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나올 법한 대형 물고기 등이 흐릿하다. 그는 많은 시간과 공력으로 정교하고도 성실하게 잘 표현된 여러 형상들을 다시 흙 속에 묻어버리는 것처럼 주저 없이 지운다. 그러기에 권순익의 그림에는 ‘버림’의 미학이 공존하는 것 같다. 세상의 온갖 것들을 하나하나 훌훌 털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서처럼 소중히 여기고 집착해온 것들을 버리는 작업은 쉬운 게 아닌 것이다. 고생하며 그려서 얻은 멋진 형상을 다시 물감 속에 묻어버리는 작업은 집착을 벗어난 초연함과 여유로움을 지닌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권순익은 흙처럼 고운 심성으로 무욕의 경계를 넘나들 듯이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한다. 그는 오늘도 고요하고 적적할 것만 같은 작업실 한 구석에서 작업 삼매경에 빠져 있음에 분명하다. 우리는 그의 그림을 통해 막걸리와 같은 텁텁한 여운과 은근한 형상들에서 나오는 버림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세종대학교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18 Saphira & Ventura 갤러리, 뉴욕, 미국

2018 DYC 갤러리, 대구

2018 ‘積·硏(적·연) – 쌓고, 갈다’, 영은미술관, 경기도

2017 ‘無我(무아)’, Imaginart 갤러리, 바르셀로나, 스페인

2016 가일미술관, 경기도

2016 아트소향 갤러리, 부산

2016 ‘無我(무아)’, Museo de Arte Moderno (MAMJAA), 메리다, 베네수엘라

2015 UNC갤러리, 서울

2015 줄리아 현대미술관(Museo de Arte Contemporaneo del Zulia), 베네수엘라

2015 한국-베네수엘라 수교 50주년 기념전- 베네수엘라 국립현대미술관(Museo Nacional de Arte Contemporaneo Caracas), 베네수엘라

2014 ‘無我(무아)’, 갤러리 팔레드 서울, 서울

2013 아트소향 갤러리, 부산

2011 화이트홀 갤러리, 서울

2011 ‘신명나게 놀자’ 목인박물관 기획초대전, 목인박물관, 서울

2011 LGM Arte International 갤러리, 보고타, 콜롬비아

2011 ‘은유의 시간’, Espacio de UBS Punta del Este, 우루과이

2011 마이라 갤러리, 마이애미, 미국

2010 ‘은유의 시간’, 백송화랑, 서울

2010 콜롬비아 톨리마 미술관 초대전(Museo de Arte del Tolima), 이바게, 콜롬비아

2010 우루과이현대미술관초대전(Museo De Arte Contemporaneo de el Pais), 몬테비데오, 우루과이

2009 구상대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08 ‘읽다’, 백송화랑, 서울

2007 한국일보 미술관, 서울

2006 갤러리 호르헤 온티베로스, 마드리드, 스페인

2005 인데코 갤러리, 서울

2005 Art Seoul, 예술의 전당, 서울

2004 KEPCO 공모 초대개인전, 한전갤러리,서울

1999 갤러리 아오르, 서울

1996 삼정아트스페이스, 서울

 

작품소장

줄리아 현대미술관, 베네수엘라 / 베네수엘라 국립현대미술관 / 톨리마미술관, 콜롬비아 / 태평양건설 / 성남아트센터 / (주)박영사 / 한국일보 / 해태제과 / LG화학 / 동양제철화학 / Cosmo Arte Gallery, 스페인

/ 그 외 개인 소장 – 싱가포르, 베네수엘라, 중국

 

권순익 33.4x24.2cm

권순익 33.4×24.2cm

 

적연(신기루 8-02) 90.9x72.7_2017

적연(신기루 8-02) 90.9×72.7_2017

 

적연(신기루 7-01)_72.7x60.6cm_Mixed media on canvas_2017

적연(신기루 7-01)_72.7×60.6cm_Mixed media on canvas_2017

 

적연-틈 소품

적연-틈 소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