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간: 2024.10.16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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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 건국대 현대미술과 겸임교수
한때, 예술-작품은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근대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예술과 일상 사이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예술과 비예술을 구하는 것이 무의미한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이젠 어떤 대상, 어떠한 형식, 어떠한 내용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뒤샹의 <샘>,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이런 경향을 잘 증명해 준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아서 단토(Arthur Danto, 1924~2013)가 말한 ‘예술의 종말’이란 개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예술의 종말 이후, 새로운 시대에 펼쳐진 예술에 관한 통찰을 피력한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예술의 종말 이후 예술의 조건은 두 가지. 첫째, 그것은 ‘무엇에 관한 것(about something)’이다. 둘째, 그것은 의미를 담고 있는 시각적 구현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각적 구현물, 즉 작품은 ‘일상적인 것의 변용’을 포함한다. 과거엔 예술이 아니었던 것이 이제는 예술이 될 수 있는 근거를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더불어 아서 단토는 비평(가)의 역할을 작품에 깃든 의미를 확인하고 그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 듀오 작가 부리한 작품이 좋은 예다. 그들은 ‘쓰임’이라는 기능성에 바탕을 둔 전통적 의미로서 ‘공예’의 한계를 넘어섰다. 일상을 예술의 단계로 확장시켰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펠트회화로 표현한 행복
비평(가)의 시선을 빌린 관람자 입장에서 부리한 작품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 이면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려 본다. 의미는 작품에 깃든 속뜻, 즉 내용을 말하고 가치는 겉으로 드러난 형식적을 일컫는다.
우선, 내용적인 측면. 부리한 작품에서 일관되게 수렴되는 주제는 행복이다. 아서 단토의 주장대로 말하면, 부리한 작품은 ‘행복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창작 의도가 여기에 있다. 화면에 주로 등장하는 도상은 한결같이 ‘행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꽃과 나무/화분 같은 식물, 부엉이/강아지 같은 동물, 책과 샹들리에/장난감 같은 사물이 그러하다. 은유적으로 드러나는 아이콘은 모두 행복을 상징한다. 또한 ‘치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이미지들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평범하고 소소하다. 순박한 부부/부리한의 성품마냥 온화하고 평온하다. 자극적이라거나 거칠고, 사나운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큰 소리로 우렁차게 떠들어대는 거대담론이 아니다. 달콤하게 속삭이는 공감의 목소리다. 따뜻하게 토닥이는 위로의 온기를 담고 있다. 전체적인 화면구성은 초현실적이다.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현실과 허구, 구상과 추상, 자연과 인공, 정물과 풍경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공간연출이 돋보인다.
“행복은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부리한 작품이 그렇다. 그들 작품을 가까이 두고 오랫동안 여러 번 수시로 볼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면 볼수록 행복한 감정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 기억, 순진무구한 동심(童心)을 불러일으킨다. 거친 세태에 찌들고 지친 현대인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
이어서 형식적인 측면을 보자. 무엇보다 ‘펠트(felt)’라는 재료의 특성과 독창적인 기법이 먼저 눈에 띤다. 펠트는 서로 엉키는 성질이 있는 양털(羊毛)로 만든 섬유. 말 그대로 순수한 천연(天然) 재료다. 엉킨 양털 그대로 직접 사용한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 천을 짜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기원전부터 양모를 이용한 섬유를 만들어 왔다. 펠트는 무엇보다 보온성이 뛰어나다. 가벼워서 옷이나 모자, 카펫 등 일상생활에 두루두루 널리 사용됐다. 실용성, 즉 쓰임에 바탕을 둔 공예 분야에서 각광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리한은 이런 양모 특성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일컬어 ‘펠트 회화’로 규정한다. 양모를 가공한 펠트로 회화적인 표현이 가능함을 증명한다. 앞서 언급한 ‘일상적인 것의 변용’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부리한은 작업 배경과 의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 작업은 따뜻한 회화적인 물성을 가지고 있는 천연 소재 양모를 이용하여 제작한 독창적인 펠트회화 작품입니다. 펠트회화는 양모를 분리하고, 쌓고, 압축하고, 찌르면서 작업을 합니다. 물감과 붓을 대신해 양모와 특수바늘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므로 수천수만 번의 반복적인 작업과정으로 완성되는 노동집약적인 작품입니다. 작가에게 노동은 행복이며 치유화의 과정입니다”라고. 그러면서 “펠트는 마술 같은 물성을 지닌 재료입니다. 양모가 보여준 물성의 한계는 아직까지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이런 진술을 통해 펠트회화가 지닌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번 2448 아트스페이스 전시 출품작은 모두 부부의 합작품이다. 그동안 부리한이 겪은 희로애락이 그 속에 담겨있다. 행복에 관한 정서와 치유를 기원하는 마음이 깃든 소중한 결과물이다.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과 행복한 소통을 희망한다”는 부리한. 이제 그들의 초대에 호응하는 것은 관객 몫이다. 부리한 작품에 공감하고 새로운 예술(품)을 향유하고 만끽할 줄 아는 이. 그런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 아닐까.
부리한 Buleehan
부리한 Buleehan
이재범 b.1971 한상미 b.1975
부리한은 ‘이재범’와 ‘한상미’가 결성한 부부작가 듀오이다. ‘눈망울이 억실억실하게 크고 열기가 있다’라는 순우리말 부리하다에서 영감을 받고 두 작가의 성을 따서 활동명을 만들었다. 경원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섬유미술과 디자인, 공예학을 전공한 작가는, 바늘이 지나갈수록 단단해지는 펠트의 물성에 반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양모펠트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개인전 10회 및 다수의 단체전에 출품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파주출판도시 문화재단,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펠트공예>와 <마냥 7살 송이>가 있다.
교육
2004 홍익대학교 대학원 디자인, 공예학과 박사과정 수학
2000 경원대학교 대학원 응용미술학과 섬유미술전공 졸업
1997 경원대학교 미술대학 섬유미술과 졸업
개인전
2023 제10회 개인전 ‘펠트로 표현된 장면들’(Galerie Nouchine Pahlevan, 파리)
2023 제9회 개인전 ‘여섯 가지의 행복’ (뮤아트갤러리)
2022 제8회 개인전 ‘드림캐처’ (갤러리자작나무)
2014 제7회 개인전 ‘꿈꾸기’ (갤러리이앙)
2012 제6회 개인전 ‘Fusion’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갤러리)
2010 제5회 개인전 ‘깎기·씌우기·압축하기·찌르기’(한전프라자갤러리)
2009 제4회 개인전 ‘Road kill’ (한전프라자갤러리)
2004 제3회 개인전 ‘치유(治癒)-색(色)’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갤러리)
2001 제2회 개인전 ‘치유(治癒)-반복적인 물성의 표현’(관훈갤러리)
1999 제1회 개인전 (종로갤러리)
단체전
2022 Every End is New Beginning (갤러리자작나무 수유)
2017 조선왕실의 포장전통-현대로 이어지다(국립고궁박물관)
2017 한국 뉴스타 아트전(한큐백화점갤러리, 오사카)
2015 부산디자인페스티벌(BEXCO)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알랭드보통 특별전(옛 청주연초제조창)
2013 공예트랜드페어(코엑스)
2013 서울디자인페스티벌(코엑스)
2013 예술가의 선물전(갤러리세인)
2012 도시농부의 작업실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12 메종앤오브제(paris-nord villepinte, 파리)
2011 할로윈라운지(갤러리골목)
2010 뉴욕 국제 기프트 페어(Jacob K. Javits Convention Center, 뉴욕)
2010 비블리오테크(Bibliotheque)(상상마당갤러리)
2010 순수거리_뛰어넘고 흐르면서 융합하기(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타)
2009 서교난장 2009(상상마당갤러리)
2009 “예술, 출판도시와 마주치다 전”(지지향 갤러리)
2009 미술과 놀이전-Art in SuperStar(예술의전당)
2009 서교육십2009 :인정게임_(part2) (상상마당갤러리)
2007 가나아트센타 기획 ‘7인의 유쾌한 상상력 Felt’전(가나아트센타)
2007 제3회 대구 국제 텍스타일 아트 도큐멘타전(대구문화예술회관)
2005 마가미술관 기획 “Fiber Art : flat to cube”-2005 섬유미술 청년작가전(마 가미술관)
2003 한국패션조형협회 초대 예술의상전(BEXCO)
2002 Today’s Art Textile전(Tokyo Textile Forum, 동경)
2001 목금토갤러리 기획초대 ‘한가위 선물 제안전’(목금토갤러리)
1997 가칭 삼백개의 공간전(서남미술관 / 담갤러리)
1997 제23회 서울현대미술제(한국문예진흥원미술회관)
수상
2010 한국 전통문화 자연염색 전국공모전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08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
2009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2001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201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선
2011 대한민국 디자인전람회 특선
아트페어
2023 PLAS 호텔아트쇼(JW메리어트서울)
2023 뱅크아트페어 (세텍)
2023 조형아트페어 (코엑스)
2023 아트페스타 제주(제주컨벤션센타)
2022 서울아트쇼(코엑스)
2022 PLAS 호텔아트쇼(JW메리어트서울)
2022 아트페스타 서울 (세텍)
저서
2013 【펠트공예】 출간(이재범, 한상미). 미진사.
2013 【마냥 7살 송이】 출간(이재범, 한상미). 이서원.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파주출판도시 문화재단 한전아트센타 갤러리 농심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