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간: 2025.6.7 ~ 7.12
Byungwoon Yoon
Floating Portrait
부유하는 초상
2025. 06. 07 – 07. 12
2448아트스페이스 II관
[작가노트]
눈이 내린다.
아니, 공중에 떠다닌다.
가라앉는 듯, 솟구치는 듯,
허공 속을 부유하는 백색의 입자들.
하늘에 도열한 드론들이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며
하나의 또렷한 형상을 만드는 동안,
그 사이를 떠다니는 눈의 입자들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형상의 생성과 소멸을 수도없이 반복한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길에
빛과 그림자로 접힌 팝업의 건축
중력은 공평하게도
최소한의 무게로 내려앉는다.
보존을 위해 선택된 재료는
영원을 대비하지만
정작 회화라는 그것은
휘발하는 기체처럼
결코 잡히지 않는 형상
그럼에도 우리가 늘 벽에 걸어두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는 흩어진다는 사실
우리는 잊혀진다는 사실
우리는 소멸한다는 사실
막힌 벽과 펼쳐진 공간이
중첩된 이 세계에서,
모든 회화는 결국
누군가의 초상이다.
[전시 서문]
눈의 장막 너머, 부유하는 형상들
박지현 (큐레이터, 2448아트스페이스)
윤병운의 눈 내리는 풍경을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8월 한여름에 본 그의 설경은 춥거나 시리지 않았다. 눈발이 시야를 가리고 소리마저 덮어버려, 눈과 귀의 감각이 함께 ‘화이트아웃’ 되는 듯했지만, 그것은 답답함보다는 오히려 고요한 평원 위에 선 듯한 아득함에 가까웠다. 청각, 후각, 촉각이 지워지고 희미한 시각만이 남는 그 풍경은 어딘가 꿈과 닮아 있었는데, 그 정적의 세계가 두렵기보다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눈의 장막 뒤로는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오브제들이 보인다. 모든 것을 균등하게 덮는 눈발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으며, 이들은 점점 존재의 무게를 잃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평등하고 냉정히 흐르는 시간 속에 기억과 감각이 점차 희미해지듯, 그리고 모든 사물들이 빛 바래며 퇴색하듯, 눈은 모든 경계를 흐리며 무(無)로 되돌린다. 반대로, 이 오브제들은 쌓인 눈을 비집고 설면 위로 둥실 떠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득 기억과 감정의 파편이 불쑥 떠올라 우리의 마음을 잠식하듯, 나무보다 큰 책이, 집채만한 캔버스가, 평면화된 구름이 화면을 잠식한다. 하지만 묵직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이 물체들 역시 언젠가는 눈에 덮여 사라질 운명이다. 그렇게 그의 화면 속 오브제들은, 의식 위로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기억들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부유하며 서서히 시간 속으로 사라져간다.
이처럼 ‘Floating Portrait (부유하는 초상)’이라는 전시 제목은 윤병운의 작품의 인상과 의미를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부유하는 것에는 무게가 없다. 마치 중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완전히 가라앉지도 날아오르지도 않은 채 그저 공간을 채우고 있는 눈송이들처럼. 한편, ‘비춰지거나 떠오른 형상’을 뜻하는 초상(肖像)은 윤병운의 그림 속 사물들이 실제 존재가 아닌, 표면에 드러난 모습, 즉 2차원의 환영에 가깝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목적 없이 떠도는 이미지들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문득 하나의 이미지를 포착하기도 하고, 그 이미지가 예기치 않게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잊고 있던 기억이나 감정이 불현듯 떠올라 우리를 사로잡는 심리적 메커니즘과도 닮아 있다.
그간 윤병운은 감성적이면서도 연극 무대처럼 정교하게 구성된 화면을 통해,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왔다. 그림 안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캔버스, 액자를 닮은 빈 거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닫힌 채 펼쳐지지 않는 책, 안이 비쳐 보이지 않는 창문 등은 프레임, 표면, 관찰자의 시선과 같은 회화의 기본 구조와 조건을 상기시키는 장치들이다. 회화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제약과 한계를 인식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마르지 않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 <Painter>는 바로 그 ‘회화’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마주한 예술가의 자화상처럼 읽힌다. 긴 변이 41cm 가량인 크지 않은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압도적인 크기의 캔버스 앞에 선 작가의 고뇌, 갈망 그리고 그 너머의 가능성이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수없이 많은 이미지, 기억, 감정의 파편이 떠도는 어지러운 세계에서 윤병운은 다시 그림 앞에 선다. 이는 그가 보내는 회화에 대한 찬사이자, 지치지 않는 창작에 대한 열망의 증거이다.

윤병운
윤병운
자각몽, 꿈의 한계
자각몽이 꿈속에서의 현실인식이라면 내 작업의 이미지는 현실에서 만나는 꿈의 흔적이다.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수면상태는 내가 나타내고자하는 복합적인 경계의 틈을 대변하고 있다.이렇게 의식과 무의식이 중첩된 상태에서 삶의 본질은 더욱 선명해 진다.내 작품 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일은 그것을 선택한 당사자인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영화 속에서 클리셰(cliche)가 되어버린 장면들은 창작의 법칙이 주는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마도 이러한단선적인 구조로부터 빗겨 나오고 싶은 나의 무의식이 작용했을까? 내 작품에 등장하는대상들에 대한 모호할 수밖에 없는 설명은 견고한 법칙의 틀을 최소화하거나 적어도 작가 스스로 외면해 버리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이렇게 모호함으로 가득한 세계를 더욱 모호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작품의 사실적 표현은 당연한 방법론일지도 모른다. 서로 반대편에 서서 바라보며, 호흡하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라도 나는 그 모호한 세계에 경계의 선을 더 선명하게 내리 긋는다.
내 작품이 꿈꾸는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로도 잠들지 못하고, 의식의 세계로도 깨어날 수 없는 정확하게 모호한 그 지점이다.
(현) 부산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주요 개인전
2024 Polyphony (갤러리조선, 서울)
2023 Yoon Byung Woon SOLO EXHIBITION (Gallery Booklayer, 도쿄)
2022 Loose Forest/ 느슨한 숲 (카린, 부산)
2021 MUTE (삼정갤러리, 부산)
2021 Sound of Silence (2448아트스페이스, 서울)
2020 Holly Silence (반얀트리 갤러리, 서울)
2017 Five Windows / 다섯 개의 창 (갤러리 조선, 서울)
2016 Memorandum / 비망록 (소피스갤러리, 서울)
2015 White Night / 백야 (2448아트스페이스, 서울)
2014 Full of Emptiness (갤러리 압생트, 서울)
2012 Lethe’s Forest (애술린 갤러리, 서울)
2010 Soundless (2448아트스페이스, 서울)
2008 Lucid Dream (갤러리터치아트, 헤이리)
2006 Fictional Diary (갤러리아트싸이드, 서울)
2005 Situational-Logic (첼튼햄아트센터, 필라델피아, 미국)
2003 Situational-Logic (한전플라자갤러리, 서울)
레지던시 프로그램
2018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
수상
동아미술대전 – 동아미술상, 경향 PAG – 오늘의 젊은 작가상,
인사미술제, 단원미술대전, 송은미술대전 등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주DR콩고 한국대사관, 하나은행, 한국산업은행, 93미술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