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간: 2025.9.10 ~ 10.4
Seung Hyun Lim
가꿔주는 생활
2025. 09. 10 – 10. 04
2448아트스페이스 II관
무해한 것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임승현 초대전 <가꿔주는 생활>
- 9. 10 – 10. 4
글|박지현 (2448아트스페이스, 갤러리스트)
2448아트스페이스는 9월 10일부터 10월 4일까지 임승현 초대전 <가꿔주는 생활>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2년 2인전 이후 본 갤러리와 함께하는 첫 개인전이자, 여러 차례의 단체전을 통해 맞춰온 호흡을 바탕으로 더욱 깊어진 작가의 세계를 보여준다.
무해함과 다정함의 윤리
오늘날 우리는 ‘무해함’이 특별한 덕목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경쟁과 불안과 욕심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농담처럼 내뱉는 “해치지 않아요”라는 말이 긴장을 풀어주는 안심 신호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임승현의 작업은 출발한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목소리를 높이거나 억지스럽게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입을 다문 채 다정히 응시할 뿐이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은 차갑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억지로 바꾸지 않으려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전시 제목이자 작가의 지속적인 화두인 ‘가꿔주는 생활’에서는 작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온도가 느껴진다. 그에게 있어 ‘돌봄’이란 억지로 다듬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억압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지는 풍요로움과 조화. 화면 속 존재들은 각자의 경계를 지키며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라나고, 그렇게 모여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애쓰지 않는 돌봄, 동행, 생명의 발견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농사의 신〉 연작은 작가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얻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초보 농사꾼의 서툰 손길에도 꿋꿋이 자라나는 작물들은 그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깨달음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림 속 농부가 들어 보이는 옥수수와 토마토, 홍당무는 소박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자랑스러움과 애정이 가득하다.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자란 작물들은, ‘스스로 그러한 것들’, 즉 자연 그 자체가 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한편 〈Pilgrim(순례자)〉 연작은 훨씬 단순화된 구성을 통해,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은유한다. 앞날을 알 수 없음에도 묵묵히 내딛는 걸음과 그 곁을 지키는 강아지. 어린 시절 함께 했던 반려견의 기억은 인생이라는 여정을 함께 걷는 동행의 가치를 환기한다. 특히 흙을 연상시키는 겨자색 배경을 바탕으로 소와 말, 곰과 당나귀 등 다양한 동물들 나란히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장면은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생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특별한 감동을 준다.
〈꽃개〉와 〈묘화〉에는 만개한 꽃과 네잎클로버 한가운데 자리한 반려동물의 얼굴이 등장한다. 사랑을 하는 이는 만물 속에서 아끼는 대상의 모습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작가는 작은 식물 한 포기와 반려동물의 모습으로부터 동일한 생명의 본질을 포착해낸다. 영원히 빛날듯, 사그러들지 않는 생명력이 화폭을 밝힌다.
임승현은 이러한 이야기를 한지와 과슈라는 재료로 풀어낸다. 오랜 실험을 통해 한지의 물성을 깊이 이해한 작가는 전통지 위에 서양의 재료를 얹으며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화면은 때로는 파스텔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덜 마른 회벽화나 동굴화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물감을 두텁게 쌓지 않고, 비원근법적 구성을 택하여 철저하게 평면성을 고수함으로써 원시적인 투박함과 현대적인 세련미를 함께 품는다.
무해함이 우리를 구하는 상상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여러 연작들은 일관되게 따뜻하고 다정한 정서를 전달한다. 이는 생명을 돌보고 수확을 경험해본 이, 동행의 가치를 아는 이만이 전할 수 있는 감각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임승현의 작업은 파괴하지 않고도, 해치지 않고도 함께 풍요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작품 앞에 선 이들 역시 다시 한번 상상력을 발휘해보게 된다. – 무해하고 다정한 것들, 서로를 어르는 것들이 세상을 구하는 모습을 말이다.














